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핀란드 왕국 (문단 편집) == 역사 == [[러시아 혁명]]에 의해서 [[러시아 제국]]이 폐지되는 것을 본 [[핀란드 대공국]]의 의회는 1917년에 [[니콜라이 2세]]의 핀란드 대공위 퇴위와 핀란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당시 의회 권력은 [[핀란드 사회민주당]] 등의 사회주의 세력이 가지고 있었기에 공산화를 두려워한 보수주의 세력이 집단 반발하였고, 러시아처럼 백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핀란드 내전]]을 일으켰다. 당시 의회 권력을 사회주의 세력이 잡기도 했고 이들의 지지세는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군대는 없었다. 반대로 보수주의 세력은 수는 적어도 비교적 잘 훈련된 군사들과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같은 유능한 군인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백군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압박하려는 [[독일 제국]]의 힘을 빌려 적군들을 토벌했다. 이 시점에서 독일은 핀란드를 자국의 [[보호국]]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대가로 핀란드는 1918년에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의 [[매제]]인 프리드리히 카를 폰 헤센카셀[* [[헤센 대공국]]의 방계 가문인 헤센카셀 가문의 당주. 부인은 빌헬름 2세의 막내 여동생 마르그레테]을 핀란드 국왕으로 추대했고 프리드리히 카를은 임시로 '카를레 1세'로 불렸다. 카를이 핀란드에 와 정식으로 즉위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일단은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Pehr Evind Svinhufvud)가 [[섭정]]이 되었으며, 카를은 10월에 정식으로 핀란드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과 동맹국이 항복한 11월, [[협상국]]은 핀란드에 독일 황가 인물을 왕위에 앉히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고 당시 핀란드 왕국의 총리 라우리 잉만(Lauri Ingman)이 프리드리히 카를에게 왕위 포기를 권유했다. 카를은 애초에 핀란드 왕위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억지를 부려봤자 왕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왕위를 포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스빈후부드가 섭정에서 물러나고, 뒤이어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이 섭정이 되었다. [[왕당파]]는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을 왕으로 추대했지만, 만네르헤임은 거부했다. 한편 내전으로 많은 사회주의 인사들이 학살당하거나 [[소련]]으로 망명하고 남은 적군 가담자들은 총선 참가를 금지당했지만 1919년 총선에서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38%의 득표율을 보이는 등[*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은 내전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여전히 사회민주당에 당적을 두고 총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세력은 여전히 적지 않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세력이었으며, 사회민주당과 같은 사회주의 세력은 물론이고 다양한 정치 집단 중에서 다수 세력(의회 의석의 75% 정도)이 공화국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핀란드 의회는 1919년에 [[공화국]] 체제와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채택하여 오늘날의 [[핀란드 공화국]]이 건국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